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문화 검열 (문단 편집) === 음악 === 1933년에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축음기(레코드) 취체규칙(1961년 폐지)'으로 음반에 대한 검열이 시작되어 해방 이후에도 관행적으로 검열하다가 1967년에 '음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명문화되었다. 이후 1996년 음비법 개정안 시행 전까지만 해도 음반은 음비법 제16조와 17조 1항과 2항[* ① 공연윤리위원회는 제16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심의에 있어서 다음 각호의 1에 해당된다고 인정되는 내용의 음반 또는 비디오물에 대하여는 이를 심의를 받은 것으로 결정하지 못한다. 다만, 해당 부분을 삭제하여도 사용에 지장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부분을 삭제하고 심의를 받은 것으로 결정할 수 있다. 1.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거나 국가의 권위 또는 이익을 손상할 우려가 있는 내용, 2. 미풍량속을 해치거나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내용 ②공연윤리위원회는 제16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심의에 있어서 다음 각호의 1에 해당된다고 인정되는 내용의 음반 또는 비디오물에 대하여는 년소자가 시청할 수 없음을 함께 결정하여야 한다. 1. 년소자의 건전한 덕성함양을 해칠 우려가 있는 내용, 2. 년소자에게 사행심을 유발할 우려가 있는 내용, 3. 년소자에게 성적 충동을 유발할 우려가 있는 내용, 4. 년소자에게 포악성·잔인성 기타 범죄행위를 조장할 우려가 있는 내용.]에 명시된 심의기준에 의거하여 공연윤리위원회의 검열을 받아야 했다. 이 심의가 검열로 규정되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94헌가6)을 받고, 음반 자체의 검열은 사후검열로 넘어가게 되었다. 외국음반의 경우 영상물등급위원회 추천제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역시 이것도 2006년 검열로 규정, 위헌 결정을 받아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모든 음반을 등급으로 분류하는 제도는 여전히 남아 있어서 2006년 음비게법 폐지 이전까지 영등위에서 검열했다가 이후로는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검열 중이다. 이제 인터넷 음원 시대가 열렸기 때문에, '''앨범에 있는 곡들 중 한 곡이라도 19세 미만 청취불가로 판정이 되면, 앨범의 모든 곡이 접근이 어려워진다.''' 무슨 곡이 있나하고 앨범을 클릭했는데 갑자기 19세 로고가 뜨면서 본인인증을 해야 한다. 당연히 앨범 쟈켓도 전부 19금 로고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 어이없는 이유로 19세 미만 청취불가 판정을 받는 곡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청소년보호법]] * [[긴급조치]] * [[경범죄처벌법]] * [[장발]]과 [[미니스커트]] 및 [[히피]]문화 단속 * 가수 이름 강제 국산화[* 대표적인 사례는 'Taiji Boys'를 [[서태지와 아이들]]로 이름을 바꾼 사례다. 서태지는 처음에 이렇게 강제로 바꾼 것을 보고 황당했다고 한다.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말이 더욱 친근하게 들려서, 오히려 이들의 인기에 어드밴티지를 주었다. 즉, 소 뒷걸음 치다가 쥐 잡는 것의 예시.] * [[여성가족부]] * 방송통신위원회 및 지상파 방송 -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방송 전파를 타지 않으면 홍보가 되지 않았던 당시 한국의 문화산업 구조상 이들이 2중 3중으로 검열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70년대에는 애초부터 국가에서 모든 것을 틀어쥐고 있었던 반면,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음악에 대한 탄압과 사전검열이 있었지만, 음반을 발매했다 해도 그 이후에 방송국이 2중 검열기제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송을 타지 못하면 사실상 활동을 할 수 없었다. 문자 그대로 '''문화권력'''으로 작용한 것. 당시 하드록/헤비메탈 밴드들이 겪어야 했던 수모는 당시의 밴드들의 증언으로 잘 나타나 있다. [[http://youtu.be/F2E8xRc4VFE?t=7m23s|#]] * 첫 번째 저항: [[정태춘]]의 음반 사전검열제 [[헌법소원]] - 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실현되었고, [[대한민국 제6공화국|제6공화국]] 성립 이후 생긴 [[헌법재판소]]를 통해 개인이 현행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당시 [[검열]] 제도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한명이었던 가수 정태춘은 헌법소원을 통해 음반 사전심의를 철폐시킨다. 대부분 검열 철폐에 관해서는 [[서태지]]나 메탈 밴드들의 검열에 대한 항의를 먼저 떠올리는데, 사실 '''실질적으로 법 자체를 뜯어고친 사람은 [[정태춘]]이다.''' 다시 말해 현재 K-POP의 발전은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다른 뮤지션들이 여론을 환기시킨 공로도 인정해야 하지만. * 두 번째 저항: 악마주의 음반 사건(1997) - 1997년 하반기에 모 시민단체가 [[헤비메탈]]을 비롯한 [[익스트림 메탈]] 음반을 주로 수입하던 음반사를 "반사회적 불온매체 유포"라는 주장으로 고발, 이후에 음반사 관계자가 구속되는 상황이 야기되었으나, 대중 문화계의 매우 거센 반발에 직면하게 되고, 당시 [[100분 토론]]까지 가서 "그런 음반을 들어본 적도 없다"는 검열위원의 말에 "그럼 안 들어 보고 검열을 어떻게 하느냐?"는 반대측 패널의 반격으로 인한 데꿀멍과 충공깽을 연출하던 바로 그 사건. 이 일로 제대로 역관광을 탔기 때문에 음반 사전 검열제에 관한 여론은 완전히 돌아서게 된다. 그리고 홍대 클럽에서의 라이브 공연은 사실상 양성화로 전환되는 기적[* 당시 공연관리법에 의거하면 일반음식점으로 지정된 까페의 경우는 밴드 공연을 원칙적으로 할수 없었는데, 음반 사건이 터지면서 경찰이 단속하는 사태가 벌어진 이후에 이 문제도 불거져서 반대로 그간 공연관리법에 묶여 있던 규정들이 양성화되는 상황으로 돌변, 검열 옹호 측 입장에서는 가히 대참사.][* 물론 현재 식품위생법 기준하에서도 클럽은 대부분 '''불법'''이다. 일반음식점에서 무대를 만들고 공연을 하는 것 까지는 합법화 되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서 춤을 추거나 플로어에 조명을 다는 것은 여전히 불법이다.]이 일어났다. 이당시 그 타겟이 된 익스트림계 음악을 연주하던 록밴드들은 "정당방위"라는 음반을 냄으로서 그들 나름의 항의를 하였던 셈이 되었고, 크래쉬를 필두로 한 한국 스래쉬 메탈 밴드들의 재조명과 함께 서태지의 시대유감 해금,[* 방송금지곡에서의 해금이다.] 그리고 익스트림의 포르노그라피티 앨범이 정식으로 발매되는 상황역전극이 벌어지긴 했다.[* 그러나 3집 앨범의 Peace Maker Die는 계속 금지곡이 되어 수입반으로만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는 홍대 드럭씬으로 대표되는 조선펑크가 짧으나마 강렬했던 불꽃을 피우던 전성기와 맞물리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있지만, 사실상 한국 대중음악사의 한 획을 그었던 사건이기도 하다. * 일본 대중가요 음반 수입 금지 및 국적 불문 일본어 사용 곡 검열: [[일본 문화 개방|김대중 정부까지 일본의 대중가요 음반을 수입, 판매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고]], 물론 이것도 '''법령에는 없는 초법적인 규제'''였다.[* 물론 어떻게든 구해서 듣긴 했었다. 위의 [[형레코드]]나 [[서민 CD]], [[빽판]] 참고.] 단순히 일본에서 제작된 일본어로 된 노래뿐만 아니라 일본이 아닌 나라의 가수가 부른 노래라고 해도 예외가 없었다.[* 일례로 미국 밴드 [[스틱스(밴드)]]의 대표곡 중 하나인 Mr. roboto의 경우 가사중 하나가 일본어 구절("Domo Arigato Mr.Roboto") 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던 바가 있다. 90년대에도 이 잔재는 남아있어서 김진표 노래에서 '돈까스'라는 단어가 나온다는 점을(<가위 바위 보>의 가사인 듯) 문제삼아 해당 노래가 모 방송국 음악 프로그램에 방송부적합 판정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때문에 90년대에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하던 일들이 바로 일본 노래 표절 시비. 일본노래는 대중이 모를테니 신나게 베껴댔던 것이다. 주로 구매력이 있었던 1~1.5세대 오타쿠들[* 지금의 3세대 이후 오타쿠들과 달리 인터넷이나 디지털로 뚝딱하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일본 문화를 향유하려면 검열 및 세관의 벽과 환율 및 보따리프리미엄의 벽, 인프라 미비의 벽(최소한 직할시 이상이나 되어야 대중문화를 취급하는 상점을 갈 수 있었다.) 3중고를 넘어야 했던 시절이다.] 및 일본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리스너들이 자신이 듣던 일본 음악과의 유사함을 지적 후 [[PC통신]] 등을 매개로 표절 시비를 제기하는 식으로 발생했다. 물론 90년대 이전에도 표절은 많았는데, 그 이전의 표절은 정말 사람들이 표절인 줄 몰라서 스리슬쩍 넘어갔던 일이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